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예수전" 강독 모임 참석

LA 평화의교회에서 있었던 "예수전" 강독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몇달전 뉴스앤조이 박지호 기자님께 참석 권유를 받은 뒤 계속 참석하려 하였으나
시간의 엇갈림으로 인해 어제 드디어 참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출석한것이라 역시 선천적인 내성적임(?)으로 인해 거의 아무말도 하시 않고 듣기만 하다 오긴 했지만 여러 모로 흥미있는 모임인듯 하다.

최근들어 부쩍 김규항씨에 대한 나의 관심이 늘어난것도 이 책의 공이 크다.
여러모로 토론되어져야 부분이 많은 책이기도 하고 마음속 깊이 침투되어 존재를 흔들어 놓는 깨달음의 책이기도 하다. 김규항, 예수전, 강독모임... 그 모두가 흥미로움의 연속이다.


2009년 6월 27일 토요일

청파감리교회


한국교회들 중에 제가 제일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청파감리교회" 영상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환경을 귀하게 여기며, 언제 어디서나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됨을 지향하는 교회.
이 아름다운 비젼을 교인들과 함께 힘써 나누시는 김기석 목사님.

이런 교회가 진정 기독교의 희망이며, 사회의 희망이며,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곳 이민 사회에도 이런 교회가 세워지길 소망해 봅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김기석 목사님 인터뷰에 성함이 김기철 목사님으로 오타가 나 있네요.)

누가 사람인가?

어젯밤 2시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반수면 상태에서 김규항님의 블로그를 읽다가 교육에 대한 글귀 하나를 보고 잠이 번쩍 깼다.

"오늘 한국이 절체절명의 사회인 건 물론 모든 사람이 말하듯 경제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가 아이들을 '나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에 이념과 계급을 불문하고 온힘을 모으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은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목표로 삼으며, 소박함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충만을 우습게 여기는 인간으로 키우는 걸 교육이라 믿는 사회이며, 어떻게 하면 그런 교육을 더 효율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걸 교육문제라 말하는 사회다." (김규항)

동감한다. "사람"의 정의(definition)와 "상품"의 정의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누가 좋은 상품인가가 아닌 "누가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되는게 교육이리라.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자주가는 블로그

요즘들어 가주 가는 블로그...

gyuhang.net - 김규항님의 블로그
- "B급 좌파"란 호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김규항님. 최근 그의 저서 "예수전"을 읽고 그의 글과 사상과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예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안현실을 찾는 김규항. 듣기로 그는 건강한 어린이 읽을거리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 잡지도 발행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람이다.

basil83.egloos.com - 노정태님의 블로그
- "포린폴리스 한국어판" 편집장 노정태님. 치밀한 논리전개와 혁명적 사고가 눈에 띄는 젊은 글쟁이다. (나보다 2-3살 정도 위인걸로 알고 있다.) 노정태님의 글을 읽으면 그의 혁명적 마인드와 그걸 풀어내는 글, 그리고 그걸 살아내는 적극성, 그 모든면에서 도전이 된다.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lacma


교회 목장 친구들과 함께 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다녀 왔습니다.
탈근대 시대의 문화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고 하고 싶지만, 그건 좀 오바지요. 그냥 목장 친구들과 함께 예술을 감상하고 문화생활을 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닭갈비 였고 끝은 팥빙수와 다방커피 였음.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 복제시대에 감춰진 원본

   문화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에 일종의 시대의 철학이라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발터벤야민의 말로는 현대의 시대는 기술복제의 시대다. 모든것들이 기술로 인해 빠르게 복제되고 전달되며 그 복제가 또 복제가되어 퍼져나간다. 그 복제들은 더 이상 원본과의 일치와는 관계없이 서로서로 관계하며 움직인다. 그리고 그 관계들은 어떤 특정한 위계질서로 정리되지 않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 『파이프』, p. 72). 그것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도 관계를 형성할수 있다.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긍정적 층면들이 있다. 예를들면, 계급의 붕괴와 평등이 그것이겠다. 그 어떤 철학도, 이념도, 예술도, 음악도 한가지 기준으로만 평가받지 않고, 우등과 열등이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여기서 모두는 “제 기능이 따로 있다”라는 평등적 이념아래, 모든것이 계급적이 아닌 기능적으로 분류되며 서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러다 보니 표현의 자유가 넓어지고, 무언가를 전하는 기능을 하는 media조차도 그 자체로 메세지가 되어 자기의 목소리를 내게된다. 함께 어우러져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야하는 사명이 있는 인류에겐 한층 진보된 의식이라 하겠다.
    
   하지만 또한 부정적인 측면도 엄연히 존재한다. 모든것이 복제되고 또 그것이 복제되는 동안 원본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벤야민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음에도 원본이 없어지는 이 현상을 “아우라의 붕괴”로 표현하였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고흐의 작품을 보는것과 실제 고흐의 작품을 보는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 실제 작품 앞에서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아름다움, 존재의 떨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작품을 사진으로만 봐야할때는 더 이상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원본이 사라진 세상, 본질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존재의 떨림, 그 아우라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는일이다. 혹은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을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복제 이미지의 홍수속에 본질의 이미지를 기억하지 못해 방황하게 된다. 그 현상속에 우리는 결국 "
세계가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인지, 전체적 견해를 형성할 능력을 잃어" 버리게 된다.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세계관의 공백"이라고 이야기 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과거처럼 역사의 최종목적(텔로스)을 설정하는 그런 세계관 철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상황입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과 형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시켜주는 새로운 지식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관의 공백 中>
그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방식과 형식"을 "예수"의 존재와 그의 삶, 그의 가르침에서 찾아볼수 있지 않은까. 여기서는 "다른" 방식이라고 표현 되었지만, 예수의 방식, "하나님 나라"의 모습, 그것이 결국 원본이다. 우리가 겪고있는 "세계관의 공백"을 덮어씌울 "하나님 나라"라는 그 이미지, 그것이 원본이며 진정한 현실이리라.
   모든것이 제 목소리를 내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정의를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그 평화는 당도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상을 가지고 살지만 궁극적 이상의 원본이 사라진 이때에 모두가 어지럽기만 하다. 이런 카오스 속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예수는 진짜 현실, 즉 원본이 무엇인지 그림으로 그려주고 있다. 하나님 나라, 그 진짜 현실, 그 "원본"을 우리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의 의식속에 이미지화 시켜놓고 계신다
.

그 원본이 어떠한 이미지를 띄고 있는지,
도대체 어떤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
그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을 슬슬 시작해보려 한다...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Pi - Travel to Faith


Travel to Faith
작사/작곡: 김종민

믿음을 쫓아 시간을 넘어 이렇게 힘들게 찾아왔는데 그는 아직아니라고

안일한 생활 속에 편안한 반복된 지겨움에 살이찌고 무뎌가는 생각들


내가 나를 알아감에 그는 그를 보여주네

서로의 모습속 거울되어 잃어버린 나의 조각 그가 이뤄주네


길고 긴 여정 그가 함께가네 결코 외롭지않은 너와 나의 이야기
가벼운 짐을메고 너와나 손을잡고 출발해보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내 어깨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너는 행복하다고

달리는 기차안 흔들리는 풍경속에 아직은 알수 없는 종점까지 곤한잠을 청해보네


내가 나를 알아감에 그는 그를 보여주네

서로의 모습속 거울되어 잃어버린 나의 조각 그가 이뤄주네


길고 긴 여정 그가 함께가네 결코 외롭지않은 너와 나의 이야기
가벼운 짐을메고 너와나 손을잡고 출발해보네

길고 긴 여정 그가 함께가네 결코 외롭지않은 너와 나의 이야기
가벼운 짐을메고 너와나 손을잡고 주바라보네





우리 밴드 Pi가 얼마전 선보였던 곡 Travel to Faith...

오늘날의 바리세인

오늘날의 바리세인, 그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해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예수가 바리세인들을 엄히 꾸짖으시던 그 시절, 바리세인들은 사실 별로 비난 받을만한 꺼리가 없는 사람들로 여겼졌었던 것으로 볼때, 아마 오늘날의 바리세인들도 자신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굳게 믿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바리세인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주제넘게 2000년전 바리세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국의 침략으로 부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앞세우고 지키며 제 자신을 분리시켰던 바리세인들. 그로인해 영향력도 있고 존경심도 마음껏 얻으며 살았을 양심적인 지식인들. 하지만 그로인해 자신들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을 죄인으로, 인간 답지 않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그들. 이렇게 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기 위해,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게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이 땅에 임하게 되는걸 은연중 거부하고 있었던 그들. 그 모습을 보며, 오늘날의 바리세인은 어쩌면, 바로 "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다. 바로 나, 그리고 우리. 어느정도의 사회의식을 지닌,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기독교인. 이런 나의 모습에서 바리세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변화되야 할것이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 아니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무현,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우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다들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였습니다. 집권중 추진 하였던 한미 FTA등 여러가지 불안한 경제정책들 때문에 그분을 적극지지 하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인간적인 매력과  그가 힘써 이룩하여 놓은 민주주의의 확립, 권위주의의 탈피는 높게 평가 받아야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벌, 재벌, 부유함이 짖누르고 있는 이 사회에 작은 틈을 내려 힘썼던 그의 노력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구애받지 않는 평등적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분이셨구요.

    저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사람사는 세상”을 꾸준히 외치셨던 분이였던게 기억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대통령직에 있는 5년 동안 그 이상적인 꿈이 많이 변질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이제는 우리 세대가 짚어져야할 역사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난 세대들이 나름대로 씨름 하여왔던 숙제 였고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들이 있어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놓고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더욱더 타협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 목표로의 행진에 참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죽음은 없어야 할것입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사회 때문에 사람다움을 추구 했던 사람은 이런 비참한 끝을 맞아야 하는 비극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아야할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라 생각됩니다. 타인을 본인과 다름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가치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나를 마주보고 서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사람도, 나도, 다 같은 인격체임을 깨달아 알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이라면, 저 보편적 가치를 잊지 말고 살아야 겠습니다. 최소한의 생명권을 위해 목매인 소리를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아닌 경제불황 때문에 매순간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 실업자들, 낙후한 공공시스템 때문에 거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좌절하고 있는 장애인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 터문이 없이 비싼 학비 때문에 20대때부터 큰 빚더미에 앉아있는 청년들... 그 모두가 함께 웃고 사람답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우리의 시선을 점점 더 사회의 그늘진 가장자리로 돌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