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보수', 욕망의 또 다른 이름

제목이 너무 볼온한가? 어쨌든.
'보수'란 무엇인가? 우선 위키백과 부터 찾아보자.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기존 가치관 유지를 주장하는 정치 이념이다.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기존 가치관 유지라... 뭔가 숭고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보수'가 그만큼 숭고한가? 우리의 사회는 철저히 여러 계급으로 나뉘어진다. 계급이 나뉘는걸 탈피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렇게 계급이 나뉘어 사는 우리의 사회에서, 당연히 힘있는 상류계급의 이념과 사상이 더 실현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상류계급은 본인들이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는 그 현실을 '현상유지' 하고 싶어 하고, '보수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자기만 배불르기 위한 현상유지. 이것이 오늘날의 '보수'다.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보수라기 보다는, 자기의 위치와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보수. 누구 말대로 '이념'보수는 사라지고 모든 보수는 '생계형' 보수가 되어있다. 쉽게 말해, 남이야 어떻게 됐는 최대한 나만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사상. 그것이 우리시대의 보수 이고, 난 이런 보수주의를 그냥 '욕망'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누군가는 정말 차고도 넘치고 넘쳐서 주체할수 없을 만큼 가지고 있는 이 현실 속엔 당연히 그와 반대인 사람들, 오늘 내일 먹을것 조차 없어 인간적 품위는 오래전에 손에서 놓아 버릴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존재 한다. (너무 당연한 이치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이러한 현실속에 자기만 배부르기 위해 '보수주의자'라는 가면을 쓰고 (공공 의료 보험에 괴상한 정치적 언어만 쓰면서 반대하고, 전쟁 찬양하며, 자기의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물건 취급하며) 다니는 사람들의 맨얼굴은 그저 욕망덩어리일 뿐이다.

몇가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 (CLICK HERE)



"초딩도 이해하는 예수의 경제학"



하지만 성인들은 (특히 교회 좀 다닌 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의 경제학.
(사실은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하겠다.)

*이미지 출저: gyuhang.net (일러스트 김대중)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4학년 4반 윤영식

오늘 문득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오순 선생님이 떠올랐다. 조금 쌩뚱맞은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칼빈주의 신학과 애나뱁티스트의 신학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을 하다, 문득 어릴적 읽은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 이라는 책에서 칼빈에 대해 읽었던 것이 떠올랐고, 그 책을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아이였던 나에게 선물해 주신 이오순 선생님이 문득 떠올랐다. 어쨌든 중요한건 이 생각의 흐름이 이오순 선생님을 떠오르게 했고 그 때의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잠시 미소을 지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면 초중고를 다니면서 인격적 결함이 있는 선생님을 만나 본 기억이 없는듯 하다. 특히 조국에서의 보냈던 중학교 1학년 때 까지 만났던 선생님들은 모두 학생들을 "인격체"로 대해 주셨던 고마운 분들 이셨다. 대한민국에서 보편적으로 모두가 쉽게 할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그 선생님들 중 유난히도 이오순 선생님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는 카톨릭 신자였다. "개신교"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며 주일학교를 드나들던 나에게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무언가를 강요하시기 보다는, 초등학교 4학년이였던 나의 생각에 대해 듣고 싶어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남아 교실을 청소를 해야하는 당번일 때도 함께 남아 청소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아마 저 책을 선물 받은것도 그 청소 도중 이였던것 같은데 이것은 확실하진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마음으로 도대체 아직 제 몸 하나 소중히 다루기 힘든 나이인 초딩4학년에게 저런 책을 선물해 주셨을지 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ㅋㅎㅎ) 초등학교 4학년이라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고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많이 없지만, 그냥 따뜻한 그의 모습이 오늘 문득문득 떠올랐다. 만약에 지금 찾아뵐수 있다면 함께 교실에 앉아 사는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신앙과 삶, 예수의 길 따르기 등등에 대해 함께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 할수 있을까? 지금은 그냥 꿈만 같은 이야기다. 내 기억으로 선생님이 40년대생이시라고 알고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올해 정확히 65세 이실거다. 언제나 찾아뵐날이 올수 있을까? 건강하셔야 될텐데...

2009년 7월 19일 일요일

욕망의 끝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이사야 5:8)

엄중한 경고. 시스템화된 맘몬의 체제안에 사는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말씀.

2009년 7월 8일 수요일

평등은 이 시대의 일반상식

발터벤야민이 이미 한세기 전에 예고 했던 "필자권력 붕괴"의 시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우리안에 깊이 스며들어 하나의 자연스런 일상이 된 지금, 인터넷 안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글놀이를 하고 있다. 당연히 잘쓰는 사람이 더 주목을 받고, 못쓰는 사람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현실의 "나"가 누구이건, 소득과 학벌과 직장과 사는곳과 계급에 상관 없이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할수 있게 되는 구조가 형성이 되었다. 대중은 더이상 특정한 이념으로 무장한 하나의 필자권력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다. 쌍방향성을 띄지 못한 일방적인 원웨이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대중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인터넷 글쓰기와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에 대해선 아래 동영상에서 더 자세히, 더 명확히 들을수있다. 진중권님의 설명이다.)


이러한 "평등 현상"은 인터넷 글쓰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상담을 하며, 사람들을 대하며 느끼는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세련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말 그대로 입만 살고 귀는 죽어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는듯 하다.)

영화 '똥파리'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밖에서는 병신 같은 게 집에서는 김일성 같이 굴라 그래.” 집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한 남편에게 주인공인 상훈이 내뱃는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의 오른쪽 뇌는 절박한 삶의 자리에서 억눌려 그렇게 밖에 자신을 내세울수 없는 우리내 '아버지'들과 함께 울고 있었지만, 나의 왼쪽 뇌는 비상식적인 귄위를 휘두르는 가부장적인 (일부 혹은 대다수) 한국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대사에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비상식적이며 비합리적인 모습이라는것은 이제 영장류에겐 일반상식이 된듯 하다.

윗분들은 짜증나겠지만, 제발 이런 진보적 현상을 과거로 되돌리지 말자.
이제서야 겨우 하나있는 입과 열개 있는 작은 손가락들을 통해 자기의 목소리를 낼수 있게된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그 즐거움을 다시 낼름 빼앗아가 버리지 말자는 거다. 여러가지 목소리를 접함으로 인해 '나'라고 하는 작은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관점이 넓어지는 경험을 모두 해보았을게다. 하지만 권력이라는걸 가지게 되면 이 좋은 경험을 할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모양이다. 조금은 짜증나는 현실이다.

윤세은 졸업


윤세은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사진에서 윤세은을 찾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영화 "똥파리"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픈 영화.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채 살고 있는 이들.
가난에 눌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그 분노와 억울함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표출된다.
자연스레 가족은 화목을 잃어버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 하는것 조차 고통의 시간이 되버리고 만다.
마음속에 쌓여오던 분노는 서로에게 씻을수 없는 육신과 정신의 상처를 입힌다.

주머니가 가난해지면 정신이 가난해져 버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사회 구조...
이 마몬중심 구조 속에서 가난이라는 천막 밑에 사는 이들은 사나워지고, 가족은 허물어지고, 상처 많고 더 사나운 다음 세대가 이어지고, 더욱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이 영화는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영화관람"자체가 사치인 삶...
슬픈 현실이며 어떻게든 변화되어야 될 현실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쉬지 않고 나오는 욕설이 주는 불편함은, 일반인들이 삶의 끝자락에서 사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불편함을 상징하는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 영화 꼭 보시라.

<예고편>